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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고려대 총학생회장 의혹 해명을 위해 사문서 변조

김호일 회장은 조선일보 1966년 4월19일 사회면 기사 변조 실시

​공공정책시민감시단, 고려대 측에 확인요청 공문 전달

고려대 학생지원팀, 고려대 100년사 제2권에 표시된 증거자료 회신 

​'김호일 회장은 고려대학교 제6대 총학생회장이 아니다'

[사진] 김호일 회장이 변조하여 해명서에 첨부한 조선일보 1966년 4월19일 사회면 기사.  '4백여명'의 학생이 모여 학생대표 김호일이 헌화했다는 기사를 '4천여명'으로 변조했다.  참가자를 4천여명으로 변조한 후, 변조사실을 감추기 위해 노랑색 형광펜으로 찰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책시민감시단(총재 강세호)이 공익시민검증팀을 통해 만든 ‘대한노인회 탐사보고서’에 대해 해명을 겸한 서신을 최근 김호일 회장이 각 지역연합회 사무처장과 지회장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제2차와 3차 서신을 같은 수신인들에게 보냈다.

 

공공정책시민감시단에서는 이 서신을 입수해서 분석해 보았다. 한마디로 아전인수격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순서도 따지지 않고, 증빙서류도 변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서를 첨부하였다. 자신이 편리한 부분만 빼내어 궁색한 변명을 한 것이다.

 

공공정책시민감시단의 탐사보고서는 거의 확실한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김호일 회장이 최근 지인들을 통해 공공정책시민감시단 총재를 포함한 몇 사람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리 입장에서는 제발 김호일 회장이 고소를 해주길 바란다. 임기응변으로 이때 저때 다르게 말하고 있는 김호일의 모순적 변명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백한 증거를 이용하여, 한번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호일 회장의 대한노인회 파행운영과 관련되서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10여 차례 이상 민원으로 제출하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무작정 대한노인회를 비호하는 듯, 한번도 사실을 파악하여 민원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우리는 보건복지부가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에게 민원에서 제시된 문제점에 대해 답변서를 제출하도록 한 사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공정책시민감시단 공익검증팀은 김호일 회장이 스스로 어떻게 하면 문제점에 대한 답변을 할수 있게 할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탐사보고서이다. 탐사보고서에는 누구든지 이견이 있으면 반론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때때로 의혹이 담긴 기사를 김호일 회장에게 직접 메시지나 카톡을 통해 보낼때도, 그 글에 이견이 있으면 반론을 제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어느 경우에도 김호일 회장은 공공정책시민감시단에 반론을 제기한 적이 없다.

 

그러던 중 이번에, 앞서 밝힌대로, 김호일 회장은 지역연합회 사무처장과 지회장들에게 대한노인회 탐사보고서에 대한 변명의 서신을 보낸 것이다. 바로 우리가 알고 싶어했던 김호일 회장의 변명을 김호일 회장이 직접 기술한 서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인이 직접 해명의 글을 썼으니 설사 글이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고 해도 김호일 회장은 더 이상 다른 변명을 할 기회가 없어지게 된것이다.

 

이에 따라 실버피아온라인과 공공정책시민감시단에서는 김호일의 반론 하나하나를 차례로 분석하여, 김호일 회장이 평소 어떤 형태로 변명을 해왔는지 공개하기로 했다. 첫번째 순서로, ‘김호일 회장이 진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해명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제1주제:‘진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가. 김호일 회장은 탐사보고서에 ‘1964년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김호일이 아니고 유유길이므로 김호일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 틀린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3학년 2학기(1965년)부터 4학년 1학기(1966년)까지 총학생회장이었다는 변명에 대해서

 

(공공정책시민감시단 반론)

공공정책시민감시단은 김호일 회장이 총학생회장 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여러 채널과 문헌을 통해 조사를 한바 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①나무위키(인터넷 백과사전)

1942년 경상남도 마산부 월영동에서 태어났다. 월영초등학교와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20회)를 졸업했다. 고3 당시 4.19 혁명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인 196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출처:https://namu.wiki/w/김호일)

 

②더위키(인너넷 백과사전)

1942년 경상남도 마산부 월영동에서 태어났다. 월영초등학교와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20회)를 졸업했다. 고3 당시 4.19 혁명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인 196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출처:https://thewiki.kr/w/김호일)

③전력투구(인터넷 사이트)

전력투구.png

④이것조것(인터넷 사이트)

이것조것.png

(출처: https://harrison-jo.tistory.com/entry/정치인-김호일-나이-고향-학력-이력-프로필-제18대-대한노인회장#google_vignette)

위에서 기술한 정보들에 의해 탐사보고서에서는 31페이지에 ‘고려대학교 1964년도 총학생회장 역임 및 6.3항쟁 참여 주장, 1964년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류유길(상과 61학번) 이다’라고 표기하였다.

 

나무위키와 위키,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자료에 따르면,  1964 ~ 1965년 제5대 총학생회 회장은 상과61 류유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림1]나무위키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명부
위키백과.png
[그림2]위키백과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명부
더위키.png
[그림3]더위키의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명부

그렇지만, 김호일 회장은 이번 해명서에서 자신은, 3학년 2학기(1965년)부터 4학년 1학기(1966년)까지 총학생회장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설사 그렇다 쳐도, 아래 나무위키와 위키, 위키백과의 자료에는 1965~1966년 제6대 총학생회장은 김호일이 아니고 서상욱(정치외교학과 63학번)이다.

 

나. 김호일 회장은 자신이 1966년 4월18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있는 고대 4.18 기념탑에서 이종우 총장을 비롯한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된‘4.18기념식’에서 4천여명의 고려대학생을 대표하여 정외과 4학년 김호일이 헌화한 사실이 있다는 조선일보 기사가 당시 학생대표(총학생회장) 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증 제1호증 1966년 4월 19일 조선일보 기사를 공개하고 있다.

 

(공공정책시민감시단 반론)

 

관련 기사는 조선일보 1966년4월 19일 사회면(7면) 에서 ‘고려대학교는 18일 오전 동교 교정에서 4.18 여섯돌 기념식을 조촐하게 올렸다. 4백여명의 학생들을 대표, 김호일(정외과 4년)군이 기념탑앞에 꽃다발을 바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진1)

 

이 기사에서는 ‘학생들을 대표한 김호일 군’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총학생회장’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 않다.

조선일보 1966년 4월19일 신분 7면.png
[사진1]조선일보 1966년4월19일 7면 기사 원본 캡쳐 사진

하지만 김호일 회장이 해명서에서 제시한 증 제1호증 1966년 4월 19일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오리지날 사진에 없는 ‘조선일보 제호’를 오려 붙였을 뿐아니라, 사진의 캡션도 변조하여 ‘기념식이 끝난 후 4.18 고대의거기념탑에 재학생대표들이 화환을 바쳤다’는 원래 내용을 ‘1966년 4월18일 오전 고려대학교는 동교 교정에서 4.18 여섯돌 기념식을 조촐하게 올렸다. 4천여명의 학생들을 대표, 김호일 (정치과 4년)군이 기념탑 앞에 꽃다발을 바쳤다.’고 변조하여 사진 설명을 붙혔다.(사진2)

 

그리고 기사 본문의 내용도 ‘고려대학교는 18일 오전 동교 교정에서 4.18 여섯돌 기념식을 조촐하게 올렸다. 4천여명의 학생들을 대표, 김호일(정외과 4년)군이 기념탑앞에 꽃다발을 바쳤다’고 변조하고 노랑색 형광펜을 칠해 놓았다. 아마 변조의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도록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김호일 증1호.png
[사진2]김호일 회장이 일부 변조한 후 해명서에 첨부한 증 제1호증 조선일보 1966년 4월19일 기사

김호일 회장은 변조된 기사를 해명서의 증빙으로 제출하면서 ‘4백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기념탑에 헌화한 것’을, 숫자를 과장하여, ‘4천여명을 대표하여 기념탑에 헌화했다’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4천여명 학생의 대표가 곧 총학생회장’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호일 회장은 아마, ‘4백여명의 조촐’을 해명서에 ‘사천여명의 운집’으로 표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헌화에 참석한 학생대표라는 말 외에 어디에도 김호일 회장이 총학생회장 이었단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해당기사 원본의 사진 설명글에는 ‘재학생 대표들이 화환을 바쳤다’고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헌화한 사람은 김호일 회장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을 것이므로 당일, 4.18 여섯돌 기념식에 참여하여 헌화한 재학생이 모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김호일회장의 비약은 논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다. 김호일 회장이 고려대학교 입학 연도인 1963년도 입학생이,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모교방문 축제행사를 1994년 5월에 시행했는데,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이었던 김호일이 행사준비위원장으로 활약하였고, 또한 모교에 5,0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하여 1994년 5월27일 고려대학교 김희집 총장과 고려대학교 교우회 정세영 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수여받아 사실임은 증명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공공정책시민감시단 반론)

 

김호일 회장이 해명서신에서 첨부한 ‘증 제2호증 졸업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 행사 준비위원장 공로패’ 사진은 다음 [사진 3]과 같다.

김호일 학번동기생 공로패.png
[사진3]김호일 회장이 졸업30주년 기념 모교방문축제행사 준비위원장 역할을 수행한 공로로 받은 공로패

위 (사진3)은 고려대학교 63학번 동기생들의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모교방문 축제행사(1993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됨)를 김호일 회장이 행사준비위원장을 맡아 활약하였다는 공로로 1994년 5월27일(고대인의 날 대학축제) 받은 패이며, 여기에는 김호일 회장이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구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증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라. 석주회(고대총학생회장단 모임) 명단에 대하여

 

김호일 회장은 최근 MesTimes 박선협 대기자에게 석주회(고대총학생회장단 모임) 명단[사진4]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단을 왜 제공했는지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명단에는 김호일 회장이 고려대학교 제6대 총학생회 총무부장 또는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역을 수행했고, 이 기간 동안 총학생회장은 정외과 63학번 서상욱 이었다고 표기되어있다.

 

아마도 김호일 회장은 이 명단을 통해 ‘자신이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총학생회장 이었다’고 해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총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은 엄연히 다르다. 총학생회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이고, 총학생회장 권한 대행은 당시 시국이 한일협정 반대로 총학생회장이 지명수배되어 유고가 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서상욱 총학생회장이 유고로 자리를 비웠을 때에 총무부장으로서 일을 했을 가능성은 있었을 것이다. 대학 측의 설명으로는 ‘총학생회가  교내 자율적인 운영 조직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직함이 아닌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운영 실태는 기록/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호일 회장은 ‘고려대학교 제6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이었다고 모든 프로필에 기재를 해야 옳았다. 그렇게 했다면 총학생회장 시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을 지낸 유준상씨는 인터넷 사이트 여러 곳에서 자신의 프로필에 제4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총학생회장 시비가 일어나지 않았다.

고대 총학생회장 모임 명단.jpg
[사진4]김호일 회장이 스스로 공개한 고려대학교 석주회(고려대 총학생회장단 모임) 명단

결국 김호일 회장은 이번 해명서를 통해 자신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음을 해명하지 못했다. 자신이 스스로 총학생회장이 아니라는 것을 자백한 꼴이 되어 버렸다.

 

공공정책시민감시단 공익검증팀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고려대학교에 확인하기 위해, 동교 학생지원팀에 공문을 보냈다. 고려대학교의 답변 이메일에는‘고려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고려대학교 100년사 2권 335~336페이지에 김호일 회장이 총학생회장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알려왔다.

 

결과적으로 공익검증팀은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해명서에 첨부한 1966년 4월 19일 조선일보 기사가 변조된 것으로 보이므로, 김호일 회장은 '형사법상 사문서 변조죄와 변조된 사문서 행사죄’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붙임:고려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애서 발간한 고려대학교 100년사 2권 335~336페이지.

고려대학교 100년사 2권 .jpg
[사진5]고려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고려대학교 100년사 제2권 커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공고와 역대총학생회장 명단 .png
[사진6]고려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공고내용과 와 역대 총학생회장 명단(초대~15대)- 제6대 총학생회장 서상욱
[기사작성: 강세호 실버피아온라인 발행인, 기사입력시간: 2024.06.22 오전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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