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기술혁명 -반려기술 

조현정 컬럼 - 녹색살증과 반려식물 

소년은 서울에서 전학온 소녀를 개울가에서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온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한번도 보지 못한 듯 물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며 개울둑에 앉아 버렸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우체부 아저씨가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소녀)아저씨, 저희집에 편지온 것 있어요?

(우체부)너네 집이 어딘데?

(소녀)윤초시네 집인데요. 

(우체부)없어!

징검다리 중간에서 소년은 소녀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소녀의 예쁜 신발과 자신의 남루한 신발을 비교하고는 부끄러움에 소녀를 피하여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다음 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습니다.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얼굴을 비추어 보듯이 물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고기 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갑자기 물을 움켜 냅니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켜냅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얀 조약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 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갔습니다.  다 건너 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소년에게 소리쳤습니다.

(소녀) 이 바보.

소녀는 가지고 있던 조약돌을 소년에게 던졌습니다. 단발 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려갑니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습니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이었습니다.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생각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자 저 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였습니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습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소녀는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교실에서 소녀의 빈책상을 자주 바라보았습니다.  소년은 혹시나 해서 개울가에 나가 소녀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는.허전함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멀리서 개울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이유없이 징검다리를 왔다 갔다 해보기도 했습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보기도 하고 물속에 손을 잠가보기도 했습니다.  소녀가 물장난하던 모습을 그려보면서  물장구를 쳐보기도 했습니다.  소녀가 하던 것처럼, 세수를 하기도 하고 물속을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비치는 것을 보고 싫었습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여러 차례 움키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소녀를 기다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녀의 모습이 개울물에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소녀가 어느새 징검다리를 건너 내 옆에 다가온 것입니다.  소년은 소녀가 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무안해서 아무소리도 못하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디딤돌을 헛디뎠습니다. 한 발이 물 속에 빠졌지만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소녀가 안보도록 몸을 가릴 데가 있어 줬으면 좋겠지만 이 쪽 길에는 갈밭도 없었습니다.  온통 메밀밭 뿐이었습니다.  메밀꽃 냄새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고 생각되자 미간이 아찔해지면서 코피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소년은 한 손으로 코피를 훔쳐내면서 그냥 달렸습니다.  어디선가 소녀가 바보라고 말하면서 소년을 뒤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소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갈밭사이를 기어서 가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소녀 앞에만 서면 말을 못하고 몸이 얼어붙는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소녀를 좋아하나 보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오전수업만 마치고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물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수건을 물에 적셔서 얼굴에 대보기도 했습니다.  수건 너머로 소년이 나타나자 소녀는 수건을 치웠습니다.  소년은 모르는 체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여태 큰길 가듯이 건너던 징검다리를 오늘은 조심스럽게 건너갔습니다. 소녀는 소년이 새 신발을 신고온 것을 미소를 지었습니다.  소년은 모른체 하고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소녀) 얘, 이게 무슨 조개니?

(소년) 비단조개.

(소녀) 비단조개, 이름도 참 곱다.

(소녀)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소년과 소녀는 논 사잇길로 들어섰습니다. 벼 가을걷이하는 곁을 지났습니다. 허수아비가 서 있었습니다. 소년이 새끼줄을 흔들자,  참새가 몇 마리 날아갔습니다.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녀가 허수아비 줄을 잡더니 흔들어 댑니다. 허수아비가 자꾸 우쭐거리며 춤을 춥니다. 소녀의 왼쪽 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었습니다.

저만큼 허수아비가 또 서 있었습니다. 소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그 뒤를 소년도 달렸습니다.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립니다. 소녀는 지금 자기가 지나쳐 온 허수아비를 마구 흔들고 있습니다. 좀 전 허수아비보다 더 우쭐거립니다.

논이 끝난 곳에 도랑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습니다. 

 

(소녀) 저게 뭐니?

(소년) 원두막

(소녀) 여기 참외, 맛있니?

(소년)응,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소녀) 하나 먹어 봤으면 좋겠다.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우밭으로 들어가, 아직 밑이 덜든 무우 두 밑을 뽑아 왔습니다.  무우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개 건넸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깨물었습니다.  소년과 소녀는 무우를 깨물었지만  맛이 없어 그만 뱉어냈습니다.

(소녀) 맵고 아려.

(소년) 맛 없어 못 먹겠다.

산이 가까워졌습니다. 소녀가 소리치며 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소년과 소녀는 산기슭에 다달아 낙엽이 깔린 숲속으로 다가갔습니다. 소녀는 신발을 벋고 맨발로 낙엽을 비비며 좋아했습니다. 소년도 소녀를 따라 맨발로 낙엽을 비비며 즐거워 했습니다.  재미있다.

(소녀) 너도 해봐?

소년과 소녀는 돌탑이 무더기로 놓인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얹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데. 소년과 소녀는 더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참 아름다운 들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소녀는 꽃들을 꺽으며 매우 즐거워 했습니다.

산마루께로 올라갔습니다. 누가 말할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습니다.

(소녀) 저건 또 무슨 꽃이지? 꼭 등꽃 같네.

소녀는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꽃송이가 많이 달린 줄기를 잡고 끊기 시작했습니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칡덩굴을 그러쥐었습니다. 소년이 놀라 달려갔습니다.  이어 소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올리며, 소년은 제가 꺾어다 줄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칩니다. 소녀의 오른쪽 무릎에 핏방울이 내맺혔습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생채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홱 일어나 저 쪽으로 달려 갔습니다. 소년은 돌을 들어 소나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소나무에서 나온 송진을 손가락에 뭍혀가지고 왔습니다.

(소년) 이걸 바르면 빨리 나을거야.

소년은 송진을 소녀의 생채기에다 문질러 바르고는 그 달음으로 칡덩굴 있는데로 내려가 꽃 한 웅큼을 꺽어 왔습니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소녀는 아주 즐거워 했습니다.

(소녀) 와, 이쁘다. 이 꽃 이름이 뭐야?

(소년)  이건 들국화,

(소녀) 그럼 이건?

(소년) 이것은 싸리꽃, 이게 치꽃, 이게 패랭이꽃,  이게 도라지 꽃

(소녀)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어. 난 보랏빛이 좋거든!  넌 무슨 색깔을 좋아해?

(소년) 분홍색, 아니, 이게 벌써 시들었네.

(소녀) 안돼, 하나도 버리지마!

(소년) 비오겠는걸!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습니다.  삽시간에 주위가 온통 검은 보랏빛으로 변했습니다.

{2021.09.02)